미리엘 주교가 하느님 사랑으로 장발장을 용서하는 장면. 유감스럽게 자막은 '하나님'으로 표기되어 있다.<레미제라블 영상 캡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 우리나라 뮤지컬 영화 사상 최대 관객수 6백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증오와 앙심에서 사랑과 용서,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대작. 예술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을 받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이 연극이 되고 뮤지컬로 롱런하더니 다시 뮤지컬 영화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내게는 ‘장발장’이라는 만화로 먼저 다가왔던 ‘레미제라블’을 폭설이 휘몰아치던 1월 중순 안사람과 함께 감상했습니다. 집을 나서며 세 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과 송스루(Song Through) 형태의 영화라는 점에서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에 그쳤습니다. 미리엘 주교로부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확인하고 고뇌에 차 노래하며 변신하는 장발장을 보면서 곧바로 영화에 빠져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꼼짝 못하고 앉아있었으니까요.
19년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회한과 증오, 하느님의 숭고한 사랑에 감화받아 개과천선하여 사랑으로 살아가는 내용이야 원작소설부터 연극, 영화 등으로 접하여 모두가 익히 알고 있겠습니다. 마는 촬영현장에서 배우들이 라이브로 노래하면 그에 맞춰 피아노 반주 속도를 조절해 배우들 감정이입을 도와 호흡을 일치시키고 , 노래하는 장발장의 안면 한쪽은 어둡게 다른 한쪽은 밝게 처리하여 악마와 천사가 교차하는 모습을 그린 제작진의 의도, 산 정상의 수도원 전경, 무엇보다 레미제라블에서 영원한 적이었던 자베르까지 사랑으로 감싼 장발장의 사랑 실천은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신을 대면하는 것과 같다(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고 노래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변할 수 있는 사람은 숭고합니다, 나아가 그 변화를 끝까지 지켜낸 인생은 더더욱 숭고하게 보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그 ‘변화되어 숭고한 인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도입부부터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표기하더니 영화 곳곳에 誤記. 하느님 사랑으로 장발장이 회개하는 수도원 장면의 자막도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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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티> 영화 수입사들은 외화를 수입하면서 자막을 입혀 배급하는데, 그 '자막'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대작 레미제라블 역시 도입부 등 곳곳의 자막에서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표기하여 명화의 성가를 반감시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는 '하늘에 계신 신'이란 뜻으로 '하느님'으로, 개신교에서는 '유일성'을 나타내려고 '하나님'을 쓰고 있음을 번역자가 몰랐거나 간과한 듯 합니다.
국어 표현에서는 '하나', '둘', '셋' 따위 수사(數辭)에 존칭 '님'을 붙여 쓰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마는 개신교에서 이미 '하나님'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일부 지각없는 언론이나 언중(言衆)이 부지부식 간에 가톨릭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느님'해야할 곳에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쓰는 데 있습니다. 고의든 아니든 이는 가톨릭교회와 530만 가톨릭신자(2011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대한 예의에 벗어나는 행위이므로 바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 참고 블로그 포스트 : http://blog.yourstage.com/gyihk/entry/하느님과-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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